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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 공간] 칵테일과 문학에 취하는 문학살롱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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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내soppphia 2020. 7. 6.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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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칵테일과 문학에 취하는 문학살롱 '초고'

 

 

 

문학살롱 초고는 칵테일과 문학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카페 겸 서점이다. 초고와의 인연은 특별하다. 작년 신촌 허그하우스(=셰어하우스)에 살 때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이던 허그메이트가 알바로 잠시 일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초고에서 일하고 계시진 않지만 그분 덕분에 초고가 가오픈할 당시부터 구경하러 와볼 수 있었다. 초고는 가오픈할 당시 때부터 유명해질 수밖에 없는 조건들을 두루 잘 갖추고 있었던 것 같다. 문학살롱이 추구하는 가치, 칵테일과 문학의 조합, 초고 직원이 직접 낭송하는 시, 하늘로 치솟은 높은 천장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작가를 초청하여 삶의 고찰을 나누는 북토크 등 초고가 걸어가는 콘텐츠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계단을 따라 지하를 내려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간판이 방문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문학살롱이 어떤 곳인지 단 하나의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두꺼운 책 위에 무심히 얹은 와인 한 잔이 그렇게 멋스러워 보일 수가 없다. 섹시하면서도 고독한 수필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문학책과 와인이 하나가 된 듯한 물아일체의 모습같기도 하고, 이제 문학책을 덮고 와인 한 잔 곁들이면서 대화에 취해보자는 의도같기도 하다. 굉장히 단순하고 심플한 로고임에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점이 흥미롭다. 

 

 

초고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된다. 첫인상부터 남다르고 강렬하다. 우아한 느낌의 미로같은 벽면은 재질과 색상, 구조 면에서 모두 탁월했다. 미로같은 느낌을 주고자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초고는 첫 단락부터 이미 성공적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초고의 내부 인테리어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높은 천장과 고급스러운 베이지&갈색 계열의 색상이 분위기를 한층 더 고요하고 세련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벽면을 따라 들어가면 가장 먼저 초고 사용법(=이용 안내문)이 나오는데 마음이 절로 엄숙해진다. 여기서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사색에 잠길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든다. 큰 소리로 떠들지 않기. 전시된 책은 모두 판매용이기 때문에 구매 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 혹시 읽을 책을 들고 오지 않았다면 사장님이 본인이 읽던 책을 직접 빌려주시기도 하니 꼭 초고에서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마치 내가 읽고 있는 문학책의 시대상(=배경지)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마치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문학과 관련이 많은 '초고'. 그렇다면 이 '초고'라는 브랜드 네임도 '글'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보통 작가들이 글을 쓸 때 '초고', '퇴고'라는 말을 많이 쓰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예상이 든다. 놀랍게도 초고를 운영하시는 사장님은 작가 분이시다. 그럴만도 한 것이 직접 책을 큐레이팅하는 것도 그렇고, 소수의 팬층이 많은 젊은 작가분들을 초청하여 북토크를 여는 것도 그렇고, 주문이 없을 땐 중간중간 책을 읽거나 글을 쓰시는 것 같은 모습을 봤을 때도 그렇고 사장님이 충분히 작가일 수 있겠다는 복선은 많이 숨겨져 있었다. 글과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 사장님이 초고라는 공간에 문학을 들여놨듯, 브랜드 네임도 '쓰는 행위'를 함축시켜 지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사장님께 초고로 지은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그런 의미로 지은 게 맞고 더 나아가 처음 온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 편하게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내가 느끼기로는 '처음'이라는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초고라는 공간에서 판타지적 영감을 많이 받았다. 벽돌 같은 벽면은 마치 해리포터를 떠올리게 했다. 벽을 밀면 벽이 드르륵하고 무겁게 열리는 상상. 그 벽이 또 다른 공간으로 통하는 매개체가 되고 나는 재미난 모험을 떠나는 동화 속 주인공이 되는 그런 상상.

 

 

아니면 반대로 불운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도 해봤다. 벽 뒤에는 우주의 시공간, 블랙홀이 있어서 나는 소리 소문 없이 현실 세계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우주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블랙홀이 나를 집어삼켰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영감을 받은 구조는 바로 높은 천장.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초고에 처음 들어왔을 때 높은 천장에 매료됐었다. 우리나라 지하는 대부분 낮은 천장으로 설계가 되어있는데 초고는 천장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좁은 통로 공간을 통과하고 높은 천장이 나타나면서 공간이 확 트이는 느낌. 그래서 실제 크기보다 더 커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낮은 천장과 높은 천장에 둘 다 있어본 경험을 비추어봤을 때 낮은 천장보다 높은 천장이 확실히 판타지적 상상력을 끌어내기에는 좋은 구조인 것 같다. 

 

높은 천장을 보면서 들었던 상상은 바로 감옥. 이 곳은 자유로우면서도 절대 탈출할 수 없는 감옥일 지도 모른다는 상상. 그 감옥은 바로 '서재감옥'. 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서재감옥이라면 나는 두 팔 벌려 환영할 것 같다.

 

 

동시에 내가 라푼젤이 되는 상상도 해봤다.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공주라면 라푼젤처럼 머리를 길러 탈출하겠다고. 초고에 있으면서 정말 출구없는 상상을 많이 해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초고에서는 그 어떤 상상도 현실이 될 것 같은 공간이랄까. 

 

 

초고의 공간을 한껏 느끼며 1년간 연락이 끊긴 친구에게 엽서를 썼다. 엽서를 쓰는 동안 친구와 함께 나눴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서로가 간절히 바라는 기쁜 소식을 듣고 재회하는 친구와 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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