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WzA69TxTsyCMnHXJjr91BhgJGZX8qXnd8PuL769eV-s
#브랜드 목욕탕 카페 '행화탕'
목욕탕의 골격을 그대로 살려 개조한 곳으로 유명한 행화탕.
행화탕은 1967년 서울 아현동에서 시작해 약 45년간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온 동네 목욕탕이다. 아현동이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된 후 2011년에 문을 닫았었다가 현재는 젊은 기획자를 주축으로 한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 공간 트렌드를 보면 몇 십년 동안의 역사가 깃든 건물을 굳이 허물지 않고 골격을 그대로 살리는 형태를 보여주는 것 같다. 개조를 하더라도 내부만 브랜드 컨셉에 맞게 개조하는 식이다. 그것도 아주 조금. 빈 공간이 주는 여백을 최대한 살려 비워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려는 속셈처럼.
이러한 인더스트리얼 같은 공간 컨셉은 인테리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삶이 반영된 건물의 역사를, 그리고 역사의 시간을 공짜로 인수하는 것과 다름없다. 얼굴에도 삶의 주름이 지듯이, 공간에도 삶의 주름이 지기 마련인데 과거와 현대를 공존시켜 삶의 주름을 지켜나가는 것이 보기 좋다.
예전에는 확실히 인더스트리얼 같은 공간 컨셉이 트렌드였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흔한 컨셉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분명 모방은 창조의 밑거름이 될 순 있다. 하지만 이젠 특별할 것 없는 컨셉이 되어버려 약간의 피로감을 불러일으키는 지점까지 와버린 것 같다. 인기를 얻는다 싶으면 곧잘 따라해서 내놓기 바쁜 모방 문화이기에 처음에 잘 나가던 공간도 계속해서 잘 나가기란 보장도 없어졌다.
이제 행화탕 내부를 둘러보자. 행화탕 카페 내부는 외부에 비해선 목욕탕의 느낌이 덜했다. 공간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고 있던 와중에 행화탕 간판이 눈에 띄었다. 정말 그때 그 시절 목욕탕 간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 닳고 닳아져 숫자가 하나 사라진 것도, 글자들의 색이 벗겨진 것도 다 좋았다. 이는 세월의 흔적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세월의 흔적이 좋아진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엄마랑 옛날 목욕탕을 가곤 하는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날 간판을 볼 때마다 어릴 적 엄마 손 잡고 동네 목욕탕을 가던 추억이 떠올라서 마음이 포근해진다. 소품 하나하나가 매개체가 되어 향수를 불러일으킬 땐 마치 생각도 못한 깜짝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만약 공간을 기획하게 된다면 소품 하나하나에도 굉장히 신경쓰게 될 것 같다. 어떤 메시지를 담을지 고민하고, 어떤 것을 비워내고 혹은 담을지를 신중게 골라야 하니까 말이다.
소품으로 넘어가기 전에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행화탕을 둘러보며 들었던 생각은 소품에선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이 보였고, 공간에서는 목욕탕 컨셉을 살리다 만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본래의 목욕탕 컨셉을 더 살렸어도 됐었을 텐데 일부러 조금 배제를 시켰던 것일까? 빨간알이 적어도 3개는 있을 것 처럼 보였던 간장게장의 껍질을 신나게 벗겨냈는데 정작 빨간알은 1개밖에 없었을 때 드는 실망감, 그리고 아쉬움. 딱 그 느낌인 것 같다.
행화탕 내부는 파트 1과 파트 2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행화탕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공간이 파트 1, 좀 더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면 나타나는 공간을 파트 2라고 한다면, 이 둘의 공간이 많이 달라서 약간은 의아하기도 하고 신선했다. 파트 1 공간은 원래 여기가 목욕탕이었나 싶을 만큼 많이 개조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파트 2 공간은 여기가 예전에 목욕탕이었구나 싶을 만큼 목욕탕 느낌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파트 2 공간이 유독 아쉬웠던 건 느낌을 내려다 만 듯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목욕탕을 연상시키는 하얀색 벽면을 제외하고는 목욕탕이라고 느껴질 만한 것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의자와 책상도 많이 아쉬웠다. 책상이 너무 커서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기엔 불편했고 의자와 책상 자체도 목욕탕과는 관련없는 소품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행화탕 공간을 기획했더라면, 의자는 목욕탕 전용 의자 (분홍색 의자 다들 아시죠?)를 배치해놓고, 책상은 대야를 거꾸로 뒤집어서 만들어봤을 것 같다. 또는 전형적인 목욕탕의 모습인 앉아서 씻는 공간을 그대로 살렸더라면 더 재밌었을 것 같다. 손님들은 각자 앉아서 씻는 개별 공간에서 거울도 보고, 목욕탕 바구니 대신 핸드백을 놓고, 대야에 디저트와 커피를 올려두고, 목욕탕 의자에 일행과 나란히 앉아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면 되니까.
실제로 행화탕에서는 대야에 커피를 담아 서빙해주는데 그 부분이 흥미로웠다. 대야는 목욕탕 컨셉을 살린 것 중 하나였으니까. 다만 조금 아쉬웠던 건 컵 받침대가 없었다는 점이다. 아이스 커피같은 경우 얼음이 녹으면 물이 뚝뚝 떨어지기 마련인데 컵 받침대를 함께 줬더라면 디테일까지 신경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컵 받침대는 물 흡수력이 좋은 소재로 때수건을 만들어서 제공하면 좋을 것 같다.
나는 목욕탕 컨셉을 강하게 전달하고 싶기 때문에 사우나실, 온돌방, 앉아서 씻는 공간, 온탕/냉탕, 탈의실, 신발장을 모두 살려 진짜 목욕탕에 온 듯한 분위기와 서비스를 제공했을 것 같다. 가령, 손님들이 행화탕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개인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열쇠를 챙긴다. 탈의실에서는 개인의 소지품을 보관하고 카운터에서 메뉴를 주문한다. 주문 시에는 본인의 목욕탕 열쇠번호가 주문번호가 된다. 주문 후에는 이제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온탕/냉탕 좌석, 앉아서 씻는 개별 샤워 부스 좌석, 온돌방 좌석, 사우나실 좌석 중 선택할 수 있다. 원하는 곳에 자리잡고 앉으면 된다. 그리곤 주문한 메뉴가 대야에 담겨져 나오고 냅킨 대신 조그만 손수건이 나온다. (목욕탕에서 무료로 수건을 주니까 이를 차용)
다소 심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카페에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추가하는 것이다. 목욕탕에는 실제 탕에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를 활용해서 '물고기 페디큐어'를 만드는 것이다. 물고기 페디큐어란, 탕 속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물고기들이 발에 붙은 각질을 먹어서 제거해주는 것을 말하는데 커피도 마시면서 발 뒷꿈치 관리도 받을 수 있다면 일석이조일 것 같다. 실제로 낚시와 물고기 페디큐어, 카페를 겸용한 공간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목욕탕에 가면 매일 친근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때를 밀어주시는 아주머니시다. 하지만 카페에서는 실제로 때를 밀 순 없으니 때밀이 아주머니 대신에 네일 디자이너를 고용하는 것이다. 손관리를 받을 수 있는 네일숍을 예약제로 운영하고 이 네일숍은 사우나실처럼 독립적인 룸으로 만들 것 같다. 아세톤 냄새가 밖으로 새어나갈 수 없도록 말이다.
이 외에도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들이 더 있을 것이다. 이제는 행화탕 소품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행화탕은 소품에 강했다. 목욕탕 컨셉을 살린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먼저 이 행화커피 메뉴탕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 이 행화커피 메뉴탕은 화장실 대문 옆에 수건 형태로 걸려있었다. 보자마자 기발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목욕탕 하면 떠오르는 소품 중 하나인 수건을 메뉴판으로 활용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위치가 조금 아쉬웠다. 행화탕 카운터에 대문짝하게 걸려있었더라면 정말 '우와...진짜 목욕탕이다!' 하고 신기해하지 않았을까. 화장실을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를 소품.
하지만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화장실에 다녀온 사람만 볼 수 있는 위치라서 마치 나만 이 공간의 숨은 매력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런 부분에서 디테일한 의미가 더 와닿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행화탕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커피'였다. 카페답게 커피에서 목욕탕의 컨셉을 가장 잘 느껴졌다. 일부러 커피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쓴 것일까. 행화탕 메뉴를 보면, '바나나탕우유', '반신욕라떼' 같은 재미있는 네이밍들이 많이 보였다. 목욕탕에 가면 많이 마시는 바나나우유. 어릴 때나 지금이나 간간이 바나나우유가 생각나곤 하는데 그 점을 잘 살린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인상깊었던 '반신욕라떼'. 목욕탕에 가면 꼭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반신욕'인데 커피를 온탕으로 만들고 위에 사람 캐릭터를 얹어 실제 사람이 반신욕을 하는 듯한 비주얼을 낸 것이 매우매우 흥미로웠다. 이런 아이디어를 발견할 때마다 브랜드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반신욕라떼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저 사람 캐릭터가 연유로 만든 거라 천천히 녹는다고 하더라. 생각보다 얼음은 단단했고 주인장이 말씀하신 그대로 정말 천천히 녹아서 신기했다. 연유 자체도 그닥 단 편은 아니었다. 혹시나 단 맛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처음부터 달게'를 주문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재밌는 요소들이 많았던 목욕탕 카페 '행화탕'. 브랜드를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과 갔던 곳이기에 소품 하나하나까지 신나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디테일한 요소,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이 깃든 공간들을 앞으로도 많이 찾아다니고 싶다. 그 안에서 얻을 인사이트와 영감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들이니까.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