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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BELOW' 카페
성수동에는 인더스트리얼 컨셉에 맞춰 큰 공장의 뼈대만 남기고 운영되는 공간들이 많다. 한때는 전성기를 맞아 쉴새없이 돌아가던 공장이었을 과거를 상상하면 미래에는 또 어떤 공간이 대신해 있을지 씁쓸하다. 지금 성수동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도, 나도 인더스트리얼 컨셉을 따라하며 내부는 최소한의 소품들만 갖다놓고 사람들로 공간을 채운다. 그리고 성수동 대부분의 매장들은 1층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여기 전혀 다른 컨셉과 규모를 띠고 있는 카페가 있다. 마치 세잎클로버들 사이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은 기분이다. 은밀하게도 지하에 위치한 작은 규모의 카페, 그 이름은 BELOW였다.
붉은 벽돌에 저항을 하듯 흰색 띠가 둘러져 있다. 그 위에는 올곧은 기개를 가진 폰트가 적혀 있다. 지하란 원래 남몰래 몸을 피하거나 숨어 지내는 용도로 쓰이는데 이 BELOW카페만큼은 본인의 위치를 오히려 드러내고 있다. 화살표 표시를 통해 적극적으로 아래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BELOW만 놓고 보면 마치 독립서점인 것 싶은데 사실은 카페라니. 이런 반전은 늘 환영이다. 계단을 따라 아래로 들어서면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든다. 암막커튼을 걷히고 문을 드르르륵 열자마자 카운터부터 보이는 내부 구조는 분명 독특했다. 특히 나는 이 암막커튼의 장치가 좋았다. 지하라는 공간을 더 분위기있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어쩌면 주인장이 의도했던 것일까. 외부로부터 차단되어 바깥세계로부터, 그 누구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싶어서, 아니면 이 공간에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이 공간에서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어요, 지금 이 공간에, 순간에, 자신에, 상대에 집중해보세요, 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거창한 의도 없이 지하라는 공간을 더 적막하고 비밀스럽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을까. 정답이 무엇이든 간에 주인장의 의도를 상상하는 일은 늘 재미있다. 내가 공간을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이런 상상을 통해 내 시야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BELOW는 모든 게 낯설었기에 매력적이었다. 성수라는 공간이 가진 특징과는 정반대로 작고, 조용하고, 세련되고 절제된 감성이 느껴진다. 카운터에서 이 카페의 시그니처 음료와 쿠키 한 조각을 시켜놓고 이 공간의 분위기를 즐겼다. 우드와 초록의 만남. 따뜻하고 절제된 감성. 낮은 천장이 주는 안정감, 고립감. 내가 BELOW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단어들이다. 공간에서부터 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개인적으로 나는 색상에 강렬함을 느끼는 사람인 듯하다. 이번 공간에서는 유독 청록색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었다. 차분하고, 안정감있는 색상. 격식있고 절제된 색상같다. 만약 청록색이 사람이었다면 규칙을 잘 지키는 참 우직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BELOW는 주인장만의 감각이 묻어나는 공간이었기에 이 컨셉의 의도가 궁금하여 슬쩍 물어봤다.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꼈으면 해서 최대한 편안한 무드로 인테리어했다고 하셨다. 청록색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고.
마찬가지로 테이블과 의자 초이스로 편안함과 연결되어 있었다. 미국 내 학생 카페테리아가 이런 느낌의 가구들을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가장 중점을 둔 게 '편안함'이기에 이 가구를 들여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뭔가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 보다는 혼자서 책을 펴고 공부를 하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학교 교실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랄까. 청록색은 칠판의 역할을, 우드는 학교 교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니까.
조금 아쉬운 점은 테이블과 테이블 간의 간격이었다. 한정적인 공간 때문에 테이블 배치를 약간 좁게 둔 것 같았다.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사람이 없어서 편안한 느낌이 잘 조성됐지만 사람이 많아 바글바글거릴 때엔 편안한 분위기가 과연 잘 날 지는 의문이다. 또한 대화와 대화가 섞이는 건 아닐지, 옆에 사람이 듣는 건 아닐지 조금은 신경쓰며 대화를 나누지 않을까 싶었다.
공간을 둘러보다 나온 커피. 내가 시킨 것은 이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인 바닐라 라떼였다. 아담한 사이즈가 내가 평소 마시는 딱 그 정도의 커피양이어서 만족스러웠다. 양에 비해 가격이 쎈 편이기는 하지만 한 입 먹어보면 한 잔을 더 시키고 싶을 만큼 값어치가 있는 맛이었다.
내가 대용량 커피를 별로 안 좋아하는 이유가 어차피 다 마시지도 못하는 데다가 얼음이 녹을수록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BELOW에서는 얼음이 녹아 맛이 옅어질까봐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처음 그 맛 그대로 유지시켜준다. 2개의 큰 각얼음만 넣은 이유도 그런 것일까. 시원함을 유지시켜주는 데에 적당한 갯수이자, 얼음이 녹아도 전체적인 맛을 흐트리지 않는 갯수. 개인적으로 시그니처 라떼를 정말 맛있게 먹었어서 나중에 이 커피가 계속 생각날 것 같았다. 이 커피 맛을 잊지 못해서 또 방문하고 싶을 정도니 카페의 가장 기본인 '맛'에는 아주 충실히 이행한 걸로.
참 모든 게 적당해서 좋았던 BELOW 카페. 적당함을 유지하기란 참 어려운 일인데 그 어려운 일을 잘 해내고 있는 것 같다. 글을 쓰는 지금 커피가 너무 땡긴다. 글을 마무리하고 커피 한 잔 마시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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